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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만드는 방법: 이기심을 활용하기

어떤 변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기심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주체들의 이기심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면, 어떤 변화이든지 시도할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 인간이 행동한다면 그것은 이기심에 부합하거나, 최소한 다른 이기심 추구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더 풀어내기 전에 내가 믿는 대전제들을 몇 개 먼저 설명하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사람은 이기적이고, 이기심은 좋은 것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이기심에서 시작된다.

지속가능성 – Sustainability을 보장하는 것은 이익의 발생과, 미래 이익에 대한 기대이다.

선과 악은 호불호와 같이 주변 인간들로부터 “평가”되는 상대적이고 인본적인 개념이며,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생물들은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 그 어떤 생물도 본질적으로 이타적이지 않다. 이는 DNA와 세포레벨에서부터 프로그래밍된 대전제다. 생물의 본능은 DNA를 보전하는 것이다. 나는 리차드 도킨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생존과 번식은 이기심의 생물학적 표현법이다. 인류는 이성을 기반으로 이기심을 제한하는 장치와 신념들을 만들어 낸 보기 드문 생물종이지만, 인간 역시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개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한 기업, 조합, 정당, 국가 모두 이기심을 따른다. 결국 인간이 핵심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모든 세포는 넉넉한 양분과 적절한 환경을 원한다. 이러한 이기심 추구는 개체, 조직, 사회 단위로 확장되어감에 따라, 부, 명예, 권력 등 보다 복잡성이 높아지며 다양화된다.

관념적으로 선하다고 인식하는 인간의 행동 역시 미래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투자다. 어떤 행동의 동기가 순수한 참선이라고 하더라도, 그 행동이 사회에서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명예를 추구하는 개인의 이기심에 있어 이득이 된다. 다음 번에 내가 양보받을 것이라는 믿음 없이는, 지금 양보하는 일도 없다. 내가 도움을 받게 된다는 믿음 없이, 지금 돕는 일도 없다. 최근 불거진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 신뢰도 하락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받을 연금은 고갈되는데, 남을 위해 지금 내는 것을 달가워할 인간은 없으니까 말이다.

MZ세대라는 밈에 대한 내 생각도 비슷하다. 이기심의 추구를 미래로 연기하는 것은 미래에 이기심을 더 크게 충족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기인한다. 기성세대는 더 잘 살게 될 것이 확실한 내일이 있어, 오늘을 참을 수 있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MZ에게는 내일 더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기심의 실현을 비자발적으로 억제당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 더이상 이기심의 실행과 추구를 미룰 이유가 없다. 인간의 본질은 같지만, 시대가 변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이기심을 가진 존재이지만, 이기심의 극대화를 위해 조직과 사회로 모이게 된다. 비슷한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힘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공통된 이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기업, 조합, 정당과 국가를 이룬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안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경제적 이익에 대한 추구로 나타난다. 건강과 명예 역시 결국 경제적 이익에 대한 추구로 귀결된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움직인다. 돈은 육체적 편의, 정신적 만족감, 그리고 권력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이기심의 추구가 조직의 단위로 확장된 것이 기업이고, 사회 단위로 확장된 것이 국가다.

회사를 구성하는 직원과 임원, 오너는 모두 “각자의 이기심 추구”라는 목적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모여 있다. (인간에게 진정한 자유의지가 존재하는지 여부는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 액수가 크든 적든, 기업을 구성하는 개인은 “경제적 이익 추구”의 목적으로 조직에 소속되기를 선택한다. 그런 조직에서 성공하는 방법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기심의 스펙트럼 중 다른 구성원과의 교집합을 찾는 것부터다. 나한테 좋은 것을 할 때, 남에게도 좋은 결과가 일어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는 개인의 이기심 추구를 위해 상대의 이익을 무조건 억제할 필요는 없다. 역설적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개인의 이기심에도 일부 부합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글에서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친환경적 산업 변화가 실패하는 이유는, 그러한 변화가 기업에게 현재에도 이득이 없고, 미래에도 이득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재활용률이 낮은 이유는 재활용보다 새로운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쪽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재활용 플라스틱의 수익성이 더 높아진다면 플라스틱 산업은 당연하게 재활용 자원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환경주의와 비거니즘의 내러티브가 개인의 죄책감을 이용하는 저급한 수준의 설득에서 벗어나, 개인의 이기심 추구와 결부하여 설득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이지만, 공동선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변화를 만들고자 한다면, 성공을 꿈꾼다면, 나와 타인의 이기심에 대해 고민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