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리스로 알아보는 카메라의 역사
소니 A7을 필두로 미러리스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미러리스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로서의 완성형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을 카메라의 역사와 함께 풀어볼까 한다. 기계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상 해온 터라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카메라에 대한 많은 글을 읽었고, 다양한 카메라를 사용해 볼 기회도 있었다. 이번 글은 그간의 리서치와 경험들을 하나로 묶는 과정이 될 것 같다.
미러리스 카메라가 가진 기술적 특징과 원리에 대해 이해하려면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부터 짚어보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2010년대에 나온 카메라 이야기를 하기 위해 18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 접근인가 고민도 되었지만, 미러리스가 돌파한 기술적 한계를 강조하려면 이렇게 서술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의 완성형이자 미래인데, 미러리스가 개발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카메라 개발자들이 줄곧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하나의 주제가 있다. ‘필름과 작가의 시선을 일치시키는 것’. 그런 관점에서 기술적 진보를 이룬 카메라도 있었고, 이러한 대전제를 무시하면서 독특한 폼팩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글에서는 미러리스 카메라의 계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려고 한다.
-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TLR)
- 레인지파인더 카메라 (RF)
- 일안 리플렉스 필름 카메라(SLR)
- 일안 반사식 디지털 카메라(DSLR)
지난 140여 년간 카메라가 변화해 온 과정들을 짚고 나면, 지금 당신의 책상에 놓여있는 카메라가 조금 더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안 반사식 카메라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 TLR)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는 눈 두개 달린 특이하게 생긴 카메라가 바로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다. 클래식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서도 이러한 카메라를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카메라의 시초부터 카메라 개발자와 사진작가를 괴롭혔던 문제는, 실시간으로 필름이 보는 화면과 작가가 보는 화면을 일치시키면서도 필름에는 사진을 찍을 때만 빛을 쪼여주는 일이었다. (이는 이후 SLR의 등장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TLR 이전의 카메라들은 하나의 렌즈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벨벳 천을 뒤집어 쓰고, 상하좌우 뒤집힌 상이 맺히는 파인더를 육안으로 보고 앵글과 촛점을 맞춘 뒤에, 수동으로 유리원판필름을 장착하고 셔터를 열어야 했다.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한 절차가 길었기 때문에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자칫 필름을 조금만 잘못 다루면 카메라에 장착하기 전에 빛을 쪼이게 되어 필름을 날리는 일도 빈번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필름은 사진을 찍을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는 빛에 노출되면 안되고, 어떤 장면이 찍힐지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셔터를 누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이안 리플렉스 카메라다. 피사체를 사람에게 보여주는 렌즈와, 필름에게 보여주는 렌즈를 분리한 것이다. 필름은 카메라 안에 장착되어 셔터를 누르기 전까지는 빛에 노출되지 않고, 사진작가는 사진에 담고자 하는 화면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또, 이 때부터 피사체를 포착하는 동시에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
TLR은 이전의 유리원판 카메라에 비해 큰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었고, 특유의 레트로한 감성과 특이한 모양새, 중형 필름을 사용한다는 특수성 덕분에 현대에도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 나름의 단점도 많았다. 일단 렌즈를 한 쌍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단가가 비싸고 부피가 컸다. 같은 이유로 줌 렌즈를 장착하지 못했으며 렌즈 교환식 TLR이 소수 출시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카메라에 장착된 고정식 단렌즈를 교체할 수 없었다. 또한, 두 렌즈가 가능한 한 가까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가까운 피사체를 촬영할 경우에는 물리적인 시차가 존재했으며, 파인더에는 좌우가 반전된 상이 맺혀서 직관적이지 않았다.
RF 카메라
라이카로 대표되는 RF카메라는 TLR이 어떻게든 필름과 작가의 시선을 일치시키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추가한 것과 달리, 과감하게 여러 가지 장치들을 덜어낸 폼팩터의 카메라다. 그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필름과 작가가 보는 시차를 해소하지 않는 설계 방식이었다. 레인지파인더는 피사체와의 거리를 측정해 촛점을 맞춰주는 것과 필름에 찍힐 대략의 화각을 보여줄 뿐, 파인더를 통해 보이는 화면 자체도 매우 작고 렌즈에 따라 시야가 일부 가려지기도 하는 매우 제한적인 물건이었다.
다만, 라이카를 위시한 RF카메라가 여전히 유명세를 떨치는 이유는 그 크기에 있다. ‘필름이 보는 화면을 눈대중으로만 맞추겠다’는 다소 과격해보이는 설계 개념을 바탕으로, 135필름의 사용(TLR은 중형 필름을 사용했다), 미러의 삭제, 그리고 작은 레인지파인더(뷰파인더)를 채용하여 혁신적인 부피 절감을 이루어 냈다.
캔디드한 사진을 주로 작업하는 스트릿 작가들, 스파이와 잠입취재를 하는 기자들 사이에서 그 작은 크기는 파인더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사용할 만한 장점이 충분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RF 카메라는 감성을 기술로 보완하여 신제품으로 내놓을 만큼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카메라가 되었다. 후지필름 X100시리즈는 RF를 디지털로 재해석한 모델인데, 라이브뷰,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 파인더 내에 사진이 찍히는 영역을 사각형으로 띄워서 보여주는 등 다양한 편의기능으로 무장하여 레트로 팬들의 인기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일안 반사식 카메라 (SLR / DSLR)
TLR과 비슷하게 웨이스트 레벨 파인더를 사용하는 과도기적 SLR도 존재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펜타프리즘이 장착된 SLR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해 볼까 한다. SLR은 펜타프리즘이라는 신기술을 통해 RF카메라와 TLR카메라의 장점을 합쳐놓은 카메라라고 할 수 있다.
SLR은 교환이 가능한 하나의 렌즈, 상하좌우가 반전되지 않고 눈으로 보는 그대로의 상이 맺히는 뷰파인더, 그리고 최초로 AF와 AE 기능을 제대로 탑재한 바디 형태이기도 하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도 큰 구조적 변화 없이 필름을 디지털 센서로 바꾸는 것만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루어냈을 정도로 카메라로서는 ‘완성된’ 형태에 가까웠다. 물론 ‘디지털 카메라’의 관점에서 보자면 과도기적인 특징도 여럿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지 사진을 찍는 기계”로서는 완성형에 가깝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SLR과 DLSR의 가장 큰 특징은 미러와 펜타프리즘에 있다. 미러는 하나의 렌즈를 파인더, 촬영의 두 개의 기능으로 사용하게 해 준다. 또, AF/AE센서가 탑재된 경우에는 메인 미러 뒤에 작은 서브 미러를 추가로 넣어 자동 초점, 자동 노출 센서에 보내주는데, 하나의 시선을 둘 또는 세 방향으로 쪼개준다는 것이 가장 SLR의 큰 기술적 진보라고 할 수 있다.
펜타프리즘은 작가에게 상하, 좌우가 반전되지 않은 화면을 보여주는 부품이다. 렌즈를 통해 직접 보는 이미지는 상하, 좌우가 반전된 화면인데 다섯 개의 면을 가지는 프리즘(펜타 프리즘)을 통해 미러로부터 반사되어 올라온 상을 상하, 좌우로 다시 반전해 주어서 작가에게 보이는 시선 그대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현대에 와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필요에 따라 렌즈를 바꿔 촬영한다’는 개념도 SLR이 개발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RF카메라와 TLR카메라 모두 카메라에 달려나온 그대로의 렌즈를 사용해야 하거나, 렌즈 교환이 가능하다 해도 선택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는 폼팩터가 가진 기술적인 한계에 기인한 것으로, SLR은 이러한 제한을 미러와 펜타프리즘이라는 부품으로 해결했다. SLR의 근본이라 부를 수 있는 니콘의 경우 1958년에 첫 출시한 SLR과 함께 공개한 F마운트라는 렌즈 규격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덕분에 50년대에 개발된 수동 렌즈부터 최신 렌즈까지 니콘의 DSLR에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SLR 카메라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사진을 촬영할 때 미러가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오는 과정에서 충격과 소음이 발생한다는 것(미러쇼크)이 구조적인 단점이고, DSLR의 경우에는 디지털 센서를 촬영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이는 미러리스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내장된 부품들의 종류가 많아지고, 밀도가 높아지다 보니 구조가 복잡해진다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이유로 부피를 줄이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단점 중 하나다.
부족한 동영상 기능 역시 SLR의 단점 중 하나다. 물론 SLR이나 DSLR이라는 물건 자체가 동영상 촬영을 위해 출시된 기기가 아니라 단지 “동영상 촬영도 가능한”정도의 기기이기는 하지만, 동영상 촬영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은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일반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에서 렌즈 교환식 카메라로 영상을 찍는다는 것 자체는 DSLR이 열어 준 새로운 세계라는 점은 짚어줄 필요가 있다. vDSLR의 효시 격인 캐논 5D Mark2의 경우, 이런저런 제약은 많았지만 상업영화에 널리 사용되기도 했으며, 이후에 출시된 중/보급형 DSLR들은 주 사용자층을 고려해 동영상 기능에 많은 중점을 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SLR이라는 폼팩터 자체가 물리적으로 동영상 촬영에 적합하지 않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며, 미러리스가 등장하게 된 이유를 제공하기도 했다. DSLR로 영상을 촬영하려면 일단 라이브 뷰를 사용해야 하는데, SLR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인 펜타프리즘은 라이브 뷰를 사용하게 되는 순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부품이 된다. 센서에 빛을 비추기 위해 미러가 올라와서 시야를 막기 때문이다. 설계 개념, 부품의 선택, 사용자 경험 등 모든 장점이 ‘정지 화상’에 맞춰진 SLR은 동영상 성능이 중요해진 요즘에 와서는 점차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다.
미러리스
미러리스는 고성능의 디지털 센서를 이미지 촬영에만 사용하는 것은 낭비가 아닌가? 하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를 기록하는 매체가 필름에서 센서로 넘어오게 되면서 이미지를 기록할 때에만 촬상면에 빛을 노출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뒤집을 수 있게 되었고, 뷰파인더, AF/AE센서와 이미지 기록이라는 세 가지 기능을 하나의 센서로 통합하게 된 것이다.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언제나 기술의 진보로부터 오는데, 현대의 카메라에 있어서는 최신 이미지센서를 장착한 미러리스가 그런 기술적 진보의 끝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말하자면 똑딱이 카메라나, 핸드폰 카메라나 모두 ‘미러리스’라는 정의 자체에는 부합한다. 미러리스라는 말은 단순히 ‘미러가 없는’ 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러리스는 DSLR과 아이폰의 장점을 합쳐놓은 카메라라고 할 수도 있다.
미러리스는 DSLR의 가장 큰 장점인 렌즈 교환식 바디에, 휴대폰이나 똑딱이처럼 액정 화면에 보이는 것 그대로 촬영되는 특징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DSLR이 필름 SLR카메라에서 필름을 빼고 이미지센서를 넣은 것이라면, 미러리스는 이미지센서에 케이스를 씌우고 손잡이와 액정을 붙여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SLR이 필름과 작가가 보는 시선은 일치시켰을지 몰라도 결과물의 색감이나 밝기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하는데, 센서를 뷰파인더로 쓰는 미러리스는 시선, 화각, 밝기와 색감까지 실시간으로 보면서 셔터를 누를 수 있다.
미러를 삭제하고 전자식 셔터를 채용하면서(전자식 셔터의 단점도 분명해서, 대부분의 미러리스는 기존 방식의 포컬 플레인 셔터를 동시에 채택하고 있다) 무소음 연사 촬영이 가능해진 것도 장점이다. 사진은 찍어야 하지만 셔터 소리가 나면 안 되는 상황도 많은데, 말 그대로 무소음으로 이미지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은 SLR로서는 물리적으로 따라가지 못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9년 NBC에서 주최한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현장 프로듀서가 셔터 소리를 이유로 기자들에게 청중의 박수가 있을 때에만 촬영할 것을 지시했고, 소니의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겨간 기자들만 제대로 촬영이 가능했다는 일화도 있다.
비슷한 성능의 DSLR보다 압도적으로 가볍고 컴팩트한 바디도 엄청난 장점이다. SLR의 세계에서는 성능이 좋으려면 필연적으로 바디가 대형화될 수밖에 없었고 무게도 상당했지만, 그 모든 물리적인 한계를 기술로 커버하는 최근의 미러리스는 600그램대(아이폰 3대 정도의 무게다)의 바디에 6100만 화소의 센서와 막강한 동영상 촬영 기능까지 갖췄다(소니 A7R4기준).
미러리스가 SLR보다 특히 영상 기능에 있어 압도적인 장점을 보이는 것은, Mirror를 ~less하게 설계하기 위해서 이미지 센서에 통합한 AF 센서 덕분이다. DSLR 파트에서 언급했듯이, SLR은 렌즈로 들어온 빛을 두 개의 미러를 통해 이미지 센서(필름), 작가, AF/AE 센서로 각각 보낸다. 세 명의 관찰자가 동시에 각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미러를 배치한 것이다. 미러를 삭제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기능(파인더, AF/AE 그리고 이미지 기록)을 모두 이미지 센서에 통합해야만 했는데, 이것이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그 화면을 동시에 스크린으로 보면서, 자동으로 초점까지 맞출 수 있게 된 미러리스의 기술적인 특징이 된다.
그런데, 이미지센서에 여러 기능들을 통합한다는 것은 상당한 기술적 숙련도를 요하는 일이다. 한정된 이미지센서의 영역(풀프레임 기준 36x24mm) 안에 이미지 기록을 위한 픽셀과 자동 초점 센서를 욱여넣고도, 적은 노이즈, 높은 화소, 자연스러운 색 표현과 계조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소니가 미러리스의 선두주자로 치고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이미지센서 기술에 있다.
이미지센서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미러리스의 특징 상 다른 기술보다도 센서기술이 중요한데, 소니는 애플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 등의 스마트폰부터, 대부분의 니콘 DSLR과 Z시리즈 미러리스에 들어가는 센서까지 공급하는 이미지 센서 시장의 최강자다. 캐논과 니콘이 각각 R시리즈와 Z시리즈로 미러리스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미지센서 원천기술을 가진 데다, 이미 수 년 전부터 미러리스 시장을 개척해 온 소니의 a시리즈를 따라잡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SLR이 카메라의 완성형이었다면 미러리스야말로 ‘디지털 카메라’의 완성형이자 카메라의 미래다. 물리적 수명이 존재하는 기계 부품을 최대한 덜어내고 최신 전자기술을 통한 최대한의 편의기능을 탑재했으며, 전통적인 ‘카메라’의 형태는 유지하면서도 동영상 촬영이라는 새로운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미래, 미러리스. 그러나 우리는 현재에 산다.
소니를 필두로 미러리스 카메라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는 것은, 동영상이라는 매체가 글과 사진이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뛰어넘어 현대의 언어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보면 미디어의 주류가 사진이었던 시대에서, 영상의 시대로 변화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것들은 이전 것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저항을 받기 마련이다. 미러리스의 전성시대에도 SLR이라는 형태가 쉽게 도태되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렌즈다.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미러리스를 개발하면서 새로운 렌즈 마운트 규격을 채용했고, 미러리스 전용 렌즈 라인업을 함께 출시했다. 같은 브랜드의 오랜 유저라도 미러리스로 바디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간 모아왔던 모든 렌즈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DSLR 생태계에서는 저렴한 올드 렌즈를 중고로 사고팔 수 있으나, 미러리스는 바디와 함께 모든 렌즈가 최신식으로 출시되어 저렴한 올드 렌즈라는 것 자체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계적 견고함, 내구성, 방진방적 성능, 높은 발열, 낮은 배터리 수명 등도 미러리스가 당장은 SLR을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들이다. DSLR중에서도 특히 니콘의 고급형 모델들은 손에 들어보면 비상시 호신용 둔기로 사용해도 되겠다 싶은 든든한 느낌을 주고, 웅덩이에 담그지 않는 한 빗물이 좀 튀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니콘이 정글에서 방수포를 씌운 카메라로 순간을 포착하는 광고를 괜히 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미러리스도 기존의 고급형 SLR과 마찬가지로 마그네슘 합금 바디를 사용하며, 수준급의 내구성과 방진방적 기능을 내장했다. 그러나 지난 6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개량되며 완성형에 안착한 SLR과는 달리 미러리스는 바디의 형상이 세대를 거듭하며 변경되고 있는데, 이는 달리 말하면 보완할 지점이 아직 많다는 이야기도 된다. 물론 카메라라는 물건은 사용자가 느끼는 감성의 영역과 주관적인 느낌이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기이기 때문에, 단지 낯설고 크기가 작아서 SLR만큼의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고 보는 관점도 타당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무거움을 튼튼함과 연관지어 생각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미러리스 카메라가 작고 연약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자잘한 불편함이나 오작동이 가끔 발생하기는 하지만, 미러리스는 정말 훌륭한 카메라다. 렌즈군 문제는 시그마와 탐론에서 쉴 새 없이 신제품을 내며 점차 해결되어가고 있고, 내구성 문제도 ‘그런 느낌을 준다’ 뿐이지 진짜로 설탕과자처럼 바사삭 하고 부서지는 것은 아니다. 미러리스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철원의 혹한기 GOP 경계에 나서는 것도 아니고, 배터리 문제는 제조사들이 물리적으로 배터리 크기를 키우고 C타입 단자를 채택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몇 년만 지나면 여기서 제시한 문제들은 언제 있었냐는 듯 기억 저편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갤럭시 s2나 아이폰3gs가 얼마나 느리고, 뜨겁고, 금방 꺼지는 핸드폰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러리스는 카메라의 주류로 올라설 것이고, SLR은 지금의 우리가 필름 카메라를 바라보듯 사진 매니아들의 장난감으로 남게 될 것이다.
DSLR은 2020년 니콘의 D780을 마지막으로 새로운 모델이 출시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DSLR의 단종을 이미 목도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아직 과거로 사라지지 않았고, 미래는 나타났지만 현재가 되지 않았다. DSLR과 주변 장비들이 현업에서 사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도태되어, 사진 매니아들의 장난감으로 바뀌기 전까지 완전한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죠니, 사진작가인 당신의 선택은요?
요즘 아이들은 손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손바닥을 일자로 펼쳐서 귀에 가져다댄다고 한다. 전화기는 세대가 바뀌며 기술적 진보와 함께 형상이 크게 변화했는데, 카메라는 미러리스로 넘어오면서도 여전히 카메라처럼 생겼기 때문에 SLR에 익숙한 세대가 인지부조화를 느끼는 건 아닐까?
나는 DSLR로 사진을 배워서 10년간 캐논의 5D Mark2를 써왔다. 그리고, 최근 여러 장비를 새로 들이며 약 1년여간 니콘의 SLR, 소니와 후지의 미러리스를 같이 놓고 사용하면서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이 생긴 것 같다. 촬영지가 실내이고 일로서 영상을 찍을 때는 소니의 미러리스를, 가벼운 나들이에는 단렌즈를 달아놓은 후지의 미러리스를, 그곳이 어디든 사진을 건져와야 하는 때라면 주저없이 니콘의 SLR을 집을 것이다.
어쩌면, 나도 벌써 이전 것을 그리워하는 옛날 사진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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